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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라는 명칭은 여러 음료에서 사용되지만 정확하게는 학명이 Camellia Sinensis인 차나무의 어린잎을 따서 가공한 것을 이른다. 차의 시작은 전설로 살펴보는 방법, 기록을 살펴보는 방법,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무량사( 武梁祠 ) 화상석에 등장하는 신농씨 (동한=후한시대)

 

1. 전설속의 차

전설에 의하면 중국 고대 삼황(수인, 복희, 신농)중의 한 사람인 신농(염제)이 초목의 식용과 약용 가부를 알아보기 위해 산천을 돌아다니며 먹어보다가 독초에 중독이 되었는데 우연히 바람에 날려온 나뭇잎이 있어 씹어보았더니 해독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차나무는 그 이전부터 존재하였기 때문에 약 5천 년 전부터 음용되었다고 추측된다.

 

 

 

2. 차에관한 역사 속 최초의 기록

남겨진 기록을 살펴보면 B.C 200년 전 주공단(周公旦)의 이아. 석목편(爾雅. 釋木篇)에 가장 오래된 기록이 있고 사기(史記)에 의하면 B.C 1066년 서주(西周)의 파촉 지방에서 차의 재배가 행해졌으며, 춘추전국 시대에는 한족과 소수민족에 의해 본격적인 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차는 처음에는 질병치료나 예방, 제례 등의 의식에 사용되었다가 점차 기호음료로 만들어진다.

 

 

육우(陸羽)의 차경(茶經) (기원 후 780년경, 당 시대)

 

2. 차에관한 최초의 책, 당나라 육우(陸羽)의 차경(茶經)

 

8세기 때 쓰여진 육우의 ‘차경’에는 2500년 동안 차 잎을 약재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차나무의 원산지로는 중국 남부인 운남(雲南), 귀주(貴州), 사천(四川) 일대로 전해지고 있다.

차경은 또 차가 음료수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세기경 전한(前漢) 시대라고 적고 있다. 당시의 차나무는 모두 천연적으로 야생한 것으로서, 복건이나 사천 일대에서 생산되었으며, 생산량이 매우 적어 특권계급들만 향수하였다고 한다.

당시 한나라는 북방 흉노족과 싸울 때 좋은 말(馬)이 필요했기 때문에 차는 아랍의 준마와 교환하는데 쓰였다. 또 말에게 비타민C를 보충해주기 위해 찻잎을 먹였다고 한다.

후한(後漢)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삼국지(三國志) 첫머리에는 유비가 연로한 어머니께 드릴 요량으로 저잣거리에 가서 비싼 차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다 흉노족들의 횡보에 이를 빼앗기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유비의 말과 태도를 보면, 차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가 잘 나타난다. 

 

 

 

2. 우리나라의 차

 

우리나라의 경우 인도에서 허왕후가 차종자를 가져와 남쪽 지역에 심었다는 설이 있고,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에 김대렴(金大廉)이 당나라로부터 차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신라, 고려시대에는 음다풍습이 성행하였으나 조선시대로 접어들어 성리학이 도입되면서 사원 중심이던 음다풍습이 사원 쇠퇴와 함께 위축되기 시작한다. 그러한 시기에도 다인(茶人)들은 배출되었으며, 대표적인 다인으로, 서산대사(西山大師)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초의선사(草衣禪師)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초의선사는 동다송(東茶頌)을 저술하였고, 차의 다성(茶聖)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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