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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서울 오리온 다방의 모습.

- 해방 후 커피·홍차 쏟아져나오며
- 전국적으로 다방 3600여개 성황
- 잘나가는 일류다방 대형·기업화
- 드나드는 손님만 하루 3000여명

- 명동 '심지' 음반 2000장 보유해
- 음악다방으로 명성 날리기도
- 60년대 후반엔 젊은이들 찾는
- 모던한 실내장식의 다방이 대세

일제강점기 말에 태평양전쟁으로 설탕, 커피 수입이 막혀 다방의 경영은 극도로 위축돼 서울 시내에 수십 곳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으로 미군이 주둔하자 커피, 설탕, 홍차 등이 쏟아져 들어와 다방은 재기의 기회를 맞게 됐다.

1950년대 말 서울 시내 다방 숫자가 200여 개로 증가한다. 여기에는 한국적인 사정도 있었다. 손님을 접대하던 사랑방이 딸린 대갓집이 전쟁으로 대부분 파괴되어 다방을 거리의 사랑방으로 많이 이용하게 되었다는 현실도 작용했다.

다방의 역할은 실로 다양했다. 젊은 연인들의 가장 편리한 데이트장소, 응접실을 갖추지 못한 가난한 샐러리맨의 사랑방, 자칭 사장족들의 사무실, 결혼중매소, 물품거래소, 작가들의 원고교정장소, 심지어 공중화장실 대행 역할까지 폭넓게 하면서 다방의 증가 추세는 계속되어 1960년대 말이 되자 서울 시내에 1400여 개(부산은 서울의 1/3 수준) 전국적으로는 3600여 개로 증가했다.

1960년대 영화에 등장한 다방장면. 배우 최무룡과 고은아, 트위스트 김의 모습이 보인다. 김형찬 제공

일명 '물장사'라 불리는 다방업은 수지가 맞았다. 이들 다방의 매상고를 보면 도심지대의 일류다방은 하루 평균 1000~1500잔은 팔리며 그밖에 변두리의 다방은 100잔 내외로 도심지와 변두리의 매상률은 격심한 차이가 났다.

1960년대 말에 이르자 다방업은 1950년대처럼 문화예술인들의 조그만 사랑방에 머물지 않고 대형화, 기업화됐다. 건물이 섰다 하면 그 건물 속에는 꼭 다방이 있기 마련이었다.

연륜이 가장 깊은 곳으로는 해방 이후 20년을 이어왔던 세종로의 '귀거래'다방이 있었고 명동의 '본전'은 좌석수 400개로 가장 규모가 컸다. 이에 버금가는 것으로 '초원' '청자' '양지' '심지' '일번지' '한일' 등이 있었다. 이런 대형 다방은 하루에 드나드는 손님이 1000~3000명에 달했다.

다방왕으로 불렸던 이지재는 '대호' '심지' '호' '왕실' '청록' '심원' '청자' '도심' 등 관록 있는 8종의 다방을 경영했는데 그 밑에 종업원은 약 150명이나 됐다. 특히 명동의 '심지'다방은 400여 석의 좌석과 2000여 장 음반을 보유해 음악다방으로 유명했다. 이렇게 다방이 대형하하면서 선불제 다방도 등장했고 종업원들이 유니폼을 입고 인터폰으로 주문을 받는 다방도 생겨났다.

다방을 구성하는 종업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마담이다. 일명 '가오마담'이라 불리는 이들은 매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종업원들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월급을 받았다. 업주는 매상을 좌우하는 능력 있는 마담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암투를 벌였는데 일류일수록 업주가 면전에서 싫다는 표정을 지을 수가 없는 저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이 마담이었다. 마담 자격은 우선 용모가 좋아야 하고 경험 많고 손님에 따라 성격을 빨리 판단하여 대체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마담과 맞먹는 중요한 종업원은 주방을 관장하는 주방장(일명 쿡)이었다. 다방에서 서빙 하는 레지나 하꼬비(레지 보조)는 주방장의 면접을 통해 채용됐기 때문에 주방장의 권력은 상당했다. 주방장을 소홀히 대우해 다방을 하다 날린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주방장 밑에 세컨드가 있고 그 밑에 시다라는 직종이 있었는데 차를 끓이는 주방장의 임무가 끝나면 세컨드는 차를 내고 시다는 찻잔을 닦는다. 그리고 하꼬비는 다방에서 먹고 자고 하였고 레지는 출퇴근하고 점심과 저녁만 다방에서 제공받았다.

다방 전성기였던 1960년대 말 전국적으로 선호됐던 다방의 상호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많이 쓰였던 다방의 상호를 보면(괄호 안은 동명 다방수) 1.양지(24) 2.호수(18) 3.상록수(17) 4.은하수(15) 5.서울(13) 6.여정(11) 7.새마을(10) 8.금잔디(9) 9.희(9) 10.흙(8) 11.대지(8) 12.태양(8) 13.복(7) 14.에덴(7) 15.복지(7) 16.아리랑(7) 17.중앙(7) 18.나폴리(6) 19.무지개(6) 20.아담(6) 순이다.



'호젓한 관가 둘레인 중앙청 후문 건너편의 '오리온' 다방의 어딘지 우수에 잠긴 듯한 인상인 윤인숙 마담은 공무원의 다방 출입에 제약이 있어 전같이 팔리지 않는 게 야속한 눈치였다. 게다가 통화개혁 후로는 눈에 띄게 손님이 없어 야단났다는 이야기였는데 이 더위에 손님이 전같이 많아도 고통이라고 자위하고 있었다.'-대한일보 1962.7.5



위의 글은 서울 '오리온'다방을 묘사한 것인데 시청 주변의 공무원들이 주로 드나든 다방이었다. 1960년대에는 주로 성인들의 휴게실로 애용되던 다방이 1960년대 후반에 이르자 서울의 '심지'다방과 같이 많은 음반을 보유하고 모던한 실내장식으로 젊은이를 끌어들이는 음악다방으로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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